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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시설, 비리보다 더 큰 문제 있다”

  • 작성자
    서연희
    작성일
    2007년 8월 4일
    조회수
    1150
  • 첨부파일

 


 


“장애인시설, 비리보다 더 큰 문제 있다”






“장애인시설은 비리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잠자는 곳이 따로 있고, 활동하는 곳이 따로 있다. 낮 시간에 해야 할 기능을 시설이 빼앗았다. 사회적 기능을 시설화시킨 것이 바로 시설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은 음울한 이미지로 비추어졌고, 시설장애인들의 모습은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시설의 이미지가 부정적이었던 것은 국가지원이 늘어나는 만큼의 공공성이


부족했고, 장애인의 욕구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하기 보다는 과거처럼 공급자 중심의 운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과거에는 그렇게 일을 해도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가의 지원도 부족했고, 장애인들도 자신의 권리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재정도 늘어났고, 장애당사자들도 본인이 갖고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기관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달라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젠 우리가 평가를 받는 입장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복지시설도 하나의 시장이 되어 경쟁하고, 장애인은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설들은 실질적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업무시스템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협회의 직원들은 시설을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관리라는 말은 없어져야 하고 실질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들의 욕구를 분석해서 대안을 만드는 일을 수행해야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과거의 제공 중심의 서비스 방식이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비스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쁘다’, ‘좋다’의 개념으로 평가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나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없었을 때는 일부 독지가나 뜻있는 사람들이 개인의 자산을 갖고 국가와 사회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정말 성실하게 수행했던 시대가 있었다. 권리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의 개념이 확장된 지금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통제자이고, 관리자이고, 제공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대는 당사자와 지역중심의 보편적 서비스로 변화되고 있다. 다만 역사 속에서 작동하고 있던 서비스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과거의 서비스도 그 시대가 원하는 서비스로 차츰 진화 발전해 갈 것이라 믿는다. 도리어 역사를 칼로 단절해서 ‘진보냐, 보수냐’ ‘개혁이다, 아니다’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도리어 장애인계를 분리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시설협회가 무슨 일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에 대한 개념과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에 장애인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바꿔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과거에는 손상되어진 것을 경감,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신체적, 정신적 기능의 손상의 문제가 아닌 실질적인 사회통합을 제약하는 제도나 규범을 바꾸는 것이 목적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변화해야할 것이 아니라 시설협회가 변화해야하고 제도가 변해야하고 사회가 변해야하고 장애를 유발시키는 외적 요인이 변화해야 한다. 사회 환경을 변화시키는 중심은 장애를 체감하고 있는 장애인이 돼야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거기서부터 일을 만들어야한다고 본다.




제일 먼저 시설하면 떠올리는 것이 인권유린, 회계 부정 등이다. 많은 사회복지시설 운영하는 사람 중에 그런 짓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반 사회에도 항상 범죄자는 있기 마련인 것처럼, 물론 이런 점까지도 개선해나가야겠지만, 나는 사회제도가 장애인복지시설의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시설의 정체성은 가둬놓고 베푸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시설은 200년 전의 영국 신빈민법 시대의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다. 장애인계는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채택되었다. 장애인 권리도 모든 사람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천명되는 시대다.


 


시설의 정의가 법에 나와 있는 것은 한 줄뿐이다. 사회복지시설은 사회복지사업을 행하기 위해 세워진 시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복지사업을 행하기 위해 세워진 시설이 다 나쁜 것인가. 그건 아니다.




주로 대규모 생활시설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경향이 많은데, 법에 규정된 생활시설의 정의를 보면 그럴 법도 하다. 장애인복지법 48조에 규정되어 있는 장애인생활시설은 장애인이 필요한 기간 동안 생활하면서 재활에 필요한 상담, 치료, 훈련 등의 서비스를 받아 사회복귀를 준비하거나 장애로 인해 장기간 요양하는 시설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정의를 보면 소름이 확 끼친다. 생활을 하면서 사회복귀를 준비하는 곳이라는 것인데, 이는 장애인은 재활이 되어야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인간이 그 사회에서 존재하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완전성에 대한 자격기준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시설이용자 개개인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하나도 없는 그 사회의 성원이고 권리의 주체이다. 그 사람의 성장과 발달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하나도 없이 그 사회 속에서 다른 다양한 것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재활되어지고 성장되어 지고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사는 것은 재활 치료를 받아야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에 사회에 사는 것이다. 이것은 권리이다. 재활은 사회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어떻게 시설 안에서 이뤄지는가.


 


이러한 정의는 인간이 사는 곳과 활동하는 곳의 분리도 없다면 결국 가둬 놓겠다는 것이 아닌가. 굉장히 전문적인 것으로 포장이 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한 인간이 시설 속에서 일정기간 장기간 동안 살아가면서 짜여진 제한적 조치를 받아서 사회에 복귀 되어지는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법적으로 정의하는 것. 이것은 위험한 정의다.




그래서 시설의 개념 정의를 바꿔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협회가 하고자하는 첫 번째 일이다. 시설에 대한 사회적 기능 역할이 우선 법률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사회복지시설을 이용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문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빨리 바꿔야한다. 더 우스운 일은 장애인시설을 생활시설과 지역사회재활시설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장애인생활시설은 지역사회재활시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리해놓은 이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역사회라는 용어자체가 없어져야한다. 모든 시설은 지역사회시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어가 쓰이는 것은 이미 생활시설 자체를 법적으로 배제해놓은 결과다. 이렇게 해놓고 잘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분리시켜놓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식은 안 된다. 지역사회 체계로 통합시켜놓고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자립생활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경우 탈시설, 반시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통합돼서 살아가야한다고 한다. 자립생활운동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아마 자립생활과 시설이 굉장히 다른 이념적 지향성을 갖고 있다는 배경 하에서 나온 질문인 것 같다. 나는 자립생활 토론회에 제일 많이 불려나갔던 것 같다.




‘뭐는 좋다, 뭐는 나쁘다’의 흑백논리는 곤란하다고 본다. 과거의 역사들 속에서 생성되어진 산물들이 어느 시점에서 어디로 가야 된다는 변화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시설이라는 산물이 사라진다면 대안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주거가 되던, 일반 주택정책이 되든, 그게 자립생활(IL)이든…. 이것을 ‘나쁘다, 좋다’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은 논쟁이다.




나는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이다. 시설에 대해서 비판하라. 비판을 받아야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원래 세상은 대안을 마련하는 것보다 비판을 하는 것이 쉽다. 우리가 흘러나갈 그릇을 만들어가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넉넉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들을 더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릇을 만드는 작업은 하지 못하고 고여 있는 것을 두고 나쁘다고 하면 전문가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운동가도, 정치가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 무엇으로 되어야한다는 하나의 흐름과 함께 이것의 문제를 담아낼 수 있는 다른 그릇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가치적, 시대적, 이념적으로 성숙해가고 변화되어져 가는 맥락 속에 자립생활이 있다고 본다. 대립이 아니다. 시설도 필요하고 자립생활도 필요하다고 본다. 시설하면 비리와 인권유린이 떠오른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문제다. 시설은 다 나쁜 것인가. 나는 시설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문제라고 본다. 지역사회보호라는 사회 시스템에서 배제되어 있는 법률적 환경이 바로 시설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주거시설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문제라고 본다. 우리나라 법에는 시설의 사회적 기능이 그 안에서 생활도 하면서 치료도 하는, 즉 직주, 낮 시간과 밤 시간을 한꺼번에 한 공간에 이뤄지게 해놓았다. 이것이 교도소와 다를 바가 뭐가 있는가.




보통 사람들의 삶은 잠자는 곳이 따로 있고, 활동하는 곳이 따로 있다. 낮 시간에 해야 할 기능을 시설이 빼앗았다. 사회적 기능을 시설화 시킨 것이 바로 시설의 문제이다. 비리보다 더 큰 문제는 낮 시간의 활동, 즉 권리를 펼쳐나갈 것을 시설 안에 넣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신빈민법 시대의 논리와 다른 것이 없다. 왜 넣어놓았을까.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오는 것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시설의 개념적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 그리고 시설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바꿔야한다. 시설 속에서 주거와 낮 시간의 활동을 해결해서는 안 된다. 나는 주거만 해야 한다고 본다. 주거는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낮 시간의 활동에 대해서 교육의 욕구는 지역의 학교로 가야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 우리의 핵심 방안은 직주의 분리이다. 시설은 주거지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생활시설은 주거시설이 돼야한다.




당시 많은 시설운영자들이 이렇게 얘기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지원하는 복지타운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생활하는 곳도 있고, 바로 옆에 학교가 있어 조기교육도 하고, 고등부까지 다니고, 보호작업장도 만들고, 재활병원도 만들고…. 그 안에 납골당까지 짓고…. 참 대단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왜 이들의 삶이 이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됐다. 그게 바로 세팅(setting)이다. 사회적 기능을 시설 안에 내장한 것이다. 세팅 자체가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정책이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정책만의 책임인가. 시설장의 욕심도 있지 않았던가.




시기절절하게 딱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80년대 이전, 국가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86년에 처음으로 기능보강사업을 만들어서 돈을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지도 없고 님비현상도 심했다.




정부 정책은 하드웨어를 확장시켜 나가야하는데 님비현상으로 부지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기존 법인이 갖고 있던 건물 안에 지어놓으면, 님비가 안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확보하고 있었던 땅 안에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적은 예산을 갖고 공급량을 늘리려고 하니까 이렇게 된 것이다. 지역사회 곳곳에 다양하게 배치를 하려면 부지를 사야하고, 시설비용도 들어가야 하니까 작은 돈을 갖고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법인이 갖고 있는 땅에 세우고 위탁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한다. 그런데 정부의 시설 공급계획은 아직도 40명 이상의 대규모 시설 공급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까지 40명 규모의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자 한 개 시설 당 약 10억 가까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지방 같은 경우는 25평짜리 아파트를 8천만원이면 산다. 10억원만 주면 8천만원 아파트를 열 몇 개를 사게 된다. 그리고 40명 규모일 경우, 직원이 20명 정도는 된다. 그런데 그룹홈처럼 집을 열 개 사면 1개당 1명씩 10명을 지원하고도 10명이 남는다. 나머지 10명은 낮 시간의 활동을 지원하는 센터에서 일을 하면 된다. 예산이 늘지도 않고 직주를 분리시킬 수 있다. 지역사회 중심의 소규모화도 된다. 위탁법인만 선정하면 사유화도 막을 수 있다. 복지부가 이런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자기가 만든 정책이니까 자기가 무르지 못하는 것 같다. 소유구조 해결할 수 있고, 국가 자산을 유지시킬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위탁법인을 교체하면 되고, 님비도 없다. 지원센터가 있기 때문에 직주 분리 원칙을 세울 수도 있다. 우리가 개혁하자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분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 얘기했듯이 교묘히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부지가 넓게 있었고, 정부 입장에서는 공급량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기에 시설을 선택했다. 새로운 환경의 변화라든지, 당사자들의 권리 의식의 고양이라든지, 이러한 여러 가지 배경을 통해서 다른 것으로 이전을 하게 된다면 새로운 대안이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가치가 있게 되면, 기존의 가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떤 것이 되어야할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하니까 선순환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장관이라면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민간이 갖고 있는 자산 대체를 통해서 새로운 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유도해주겠다. 그러면 정부재정도 줄일 수 있고, 과거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정부는 신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들어줘야 한다. 땅 팔면서 뭘 떼어 먹을지 모른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선순환이 안 되는 것이다.




우선 원하는 곳이라도 시범사업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법인 재산을 팔지도 못하게 하고 변화도 못시키게 하고 있는 꼴이다. 묶어놓고 변화도 못하게 하면서 나쁘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장봉혜림원은 부지가 3만평이고, 장애인은 100명이 있다. 3만평을 매각을 하면 자그마치 50억 원이 넘는다. 아파트나 연립을 60채를 살 수 있다. 한 집에 4명씩만 생활해도 공급량이 100명에서 240명으로 늘어난다. 자산대체를 통해 공급량도 늘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재 직원 55명이 일하고 있는데, 만약 주택 30채를 구입해 그룹홈 형태의 주거로 전환하면 공급은 12명 정도로 확대할 수 있고, 직원 30명은 아파트에 상주하며 주거를 지원하고, 나머지 20명은 지역생활지원센터를 만들어서 낮 시간의 활동을 지원하면 지금보다 더 효율적이고 복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주거는 주거대로 가고, 낮 시간의 활동을 지원하는 인력들도 생기게 된다. 국가 재정이 늘어나는가? 전혀 늘어나지 않는다.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왜 못하게 하는가. 다 못하게 해놓고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것이다. 운동가들이든 누구이든 물이 흘러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 아닌가.




연장선상에서 어쨌든 현장에서는 비리문제 인권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공익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공익 이사제에 대한 회장님의 생각이나 시설협회의 입장은 무엇인가?




나는 시설의 소유구조를 막기 위한 공익이사제는 그리 특별한 대안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접근방식은 선량한 운영자들에게는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공익이사제 보다는 도리어 시설이 시장에서 평가 받도록 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마트에 공익이사가 있어서 물건을 사러 가는가? 소비자가 물건이 좋다고 생각하니 가는 것 아닌가? 싫으면 다른 곳에 갈 것이 아닌가.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용자가 선택하고 시설이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가야하는 것이지, 공익이사가 있느냐 없느냐는 의미가 없다.




장애인을 소비자로 위치해놓고 공급자를 경쟁시키는 구도로 바꾸어야 한다. 일본처럼 이용자의 권익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그랜드 디자인을 만들어야할 때이지 사안마다 법을 조각조각 바꾸는 것으론 문제가 개선되기 어렵다.




현재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굉장히 많이 올라와 있는데 종합해보면 7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 및 투명성 확보에 관한 사항,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 및 지역복지 전달체계에 관한 사항, 재가서비스 우선 원칙을 통한 생활시설에의 거주는 최후의 선택으로 정하는 등 서비스 정책의 방향성에 관한 사항, 각종 시설에 대한 서비스 기준마련의 근거에 관한 사항, 서비스 이용자 권리보장에 관한 사항, 사회복지사 전문성 확보와 자격기준에 관한 사항, 사회복지사 처우개선 등에 관한 사항이다.




여러 의원들이 입법 발의해 놓은 것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 얘기는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결국 현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이나 개별법들이 시대적 요구를 하나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선진 제 국가들의 정책적 흐름을 보면, ‘선별적 대상에서 보편적 대상으로’, ‘시혜로부터 권리로’, ‘중앙정부 중심에서 지방정부로’, ‘기관 중심의 서비스에서 당사자 중심의 서비스로’, ‘국가공급방식에서 시장과 민간참여 방식으로’, ‘조치방식에서 이용계약의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법체계는 그대로 두고 조항 하나 하나를 부분적으로 뜯어 바꾸자는 것이다. 나는 국가가 명확한 정책적 방향을 제대로 못 세우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나타나는 사건이나 문제, 이슈를 중심으로 일시적인 대안으로 하나씩 바꾸자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이렇게 쪼가리 쪼가리를 바꾸다 보니까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도 명확해지지 않고 있고, 재정의 낭비는 더 심화되고 있고, 이익집단간의 갈등은 심화됐다. 장애인계도 갈등이 많아졌고, 공급자도 갈등이 많아졌다.




이제는 쪼가리로 바꿀 때가 아니다. 전체의 틀을 바꾸는 그랜드디자인을 만들어야할 때이다. 이제 장애인의 권리를 고양시키려고 하면 조치제도의 방식에서 이용계약 방식으로 바뀌어한다. 장애인이 시설을 선택해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장애인시설이 인증을 받아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 그 서비스의 수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하고,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공익이사를 몇 명 넣을 것인지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현실적 상황을 보면, 시설이 더 늘어나야 경쟁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이 있다. 워낙 시설이 부족한 형편이라는 얘기인데….




그러니까 앞뒤가 안 맞는다. 공급은 모자라서 경쟁을 못시키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시설이 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시설의 기능과 역할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주거서비스에 대한 욕구는 항상 있다. 그러니까 공급량은 늘어나야한다. 과거의 시설화의 문제가 지적돼야한다. 고립이라든지, 격리라든지, 사회적 기능을 내재했다든지, 일정표에 의해 살아간다든지, 서비스를 당사자의 참여 없이 실행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개선돼야한다.




시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설의 기능을 종합선물 세트에서 주거 지원 기능으로 단순화 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시설협회는 복지부보다 건교부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본다. 건교부는 주거복지의 차원에서 다양한 주거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 하위 10%에 대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은 부족하다. 다행히 그룹홈 등에 주택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잘 연결시켜야한다고 본다. 우리가 정책 설계를 잘해놓고 나서, 주거 공급에 대한 문제는 복지부와 건교부를 잘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설은 경쟁적 운영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표준서비스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표준서비스가 존재해야만 서비스 비용도 환산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미비하기에 시설운영이 모호하기 짝이 없고, 서비스 비용도 환산을 못 시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직무 매뉴얼도 만들지 못하고, 교육훈련도 체계적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협회가 하려고 하는 일은 시설의 기능 및 역할을 다시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방향은 직주 분리, 주거와 낮 시간의 활동을 분리하는 방향이다. 주거라는 개념으로 간다면 집 같은 보편적 주거의 유형과 형태를 띠어야한다는 것이다.




의료, 소위 재활이라는 것은 지역사회 속에서 이뤄져야한다. 일본의 예를 들면, 일본의 중증요양시설은 의료보호로 이전되었다. 그러니까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의료 영역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지 시설에서 의료를 지원하지 않는 다는 원칙이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시설기준은 도리어 장애인들의 자유권과 사회권을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설의 정원을 산정하는 기준이 6세 미만은 2.0㎡이다. 이것은 가로 2m, 세로 1m 밖에 안 되는 공간이다. 거기에 개인의 책상이나 옷장을 놓을 수 있겠는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원천적으로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이 자유권과 사회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나오는 정당한 편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시설에서의 정당한 편의는 이러한 환경도 포함이 된다.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을 만들어야하는가. 이것을 지금 준비하고 있다.




장차법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자기결정권이다. 시설에는 자기결정권이 없다. 입·퇴소 문제도 그렇다. 자기결정권이라는 측면에 위배된다. 이러한 것들을 시설 정책에 반영하려면 이용계약제도로 전환을 모색해야한다. 시설서비스에서 정당한 편의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루어내야 하는가? 최소한 자유권과 사회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계돼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다른 나라들의 시설 기준을 찾아봤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1-2인실이다. 우리는 한 방에 8인이 넘지 않으면 된다. 어떻게 8명이 한 방에 살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며 살 수 있겠는가? 개인의 거실면적은 6세 미만은 2.0㎡, 6세 이상은 3.3㎡이면 된다. 교도소의 독방보다도 작은 면적이다. 거기에 어떻게 내 옷을 보관할 수 있는 권리, 내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가 존재하는가. 제도 자체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장차법과 장애인복지법에서의 주거서비스의 문제가 대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령 검토를 하고 있다. 장차법에서 시행령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 조항은 시행령 작업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면 시설에 대한 문제에서 시행령에서 다룰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복지법 자체를 전면 개정하지 않는 한 장애인복지법과 장차법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금년에 시설의 문제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채 전면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의 시행령 입법예고가 이미 끝난 상태이다. 장차법 시행령이 만들어져서 내년 4월에 시행되기 전까지 장애인복지법이 다시 바뀌지 않으면 일정기간 동안 장차법과 장애인복지법이 대립되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위기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법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큰 문제다.


반시설, 탈시설 이야기를 하는데, 다 인정한다. 그런데 뭐가 나쁘다는 핵심적인 내용을 운영자, 사람에게 맞추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다른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직업재활시설들이 작년부터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시설협회 내에는 직업재활시설들이 남아있다. 어떤 입장인가?




개인적으로도 부끄럽고 장애인계의 아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취임하기 전에 시설협회에서 직업재활시설들이 분리가 됐고, 작년 8월에 직업재활시설협회가 만들어졌다. 합의된 상태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라 불신의 상태에서 갈라졌다.




생활시설과 직업재활시설은 다른 특성을 갖고 있고, 전문적 기능은 다르기 때문에 전체 틀을 통합하고 분과로 나눠서 각자의 활동을 전문화시키면 가장 이상적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반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직업재활시설은 주거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관련 타법과의 관계에서 취약하기 짝이 없다. 생활시설 운영자나 직업재활시설장은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무 관계없는 사람도 시설장의 연명부만 첨부시켜 근로기준법으로 고발 만해도 모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가 행하는 장애인 서비스 정책이 이렇게 취약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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