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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농연에 고립된 두명의 청년

  • 작성자
    문영현
    작성일
    2005년 11월 20일
    조회수
    1621
  • 첨부파일
(화재출동 미담사례)

1995년 11월 13일 일요일 저녁
“오늘 모임 있는 날인데 알고 있지!”
사촌누나 정미라(여,32세)의 전화였다.
현대백화점 홍보팀에 근무하는 정병남(남,21세)씨는 회사일이 없는 날에는 사촌누나와 함께 컴퓨터게임 동호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모임에서 술을 많이 마신 뒤 자취하고 있는 문학동 성서주택 원룸 302호로 정씨가 다시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
같이 동거하는 사촌형 정병환(남,28세)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불꺼진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씨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침대위에 맥없이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독하게 매캐한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헉.... 헉.....콜록콜록...
술을 많이 마셨기에 정신은 없었지만 정씨는 순간 화재가 났다는 직감이 들었고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야 자신이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야! 불이야! 살려 주세요!”
정씨는 울부짖으며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화재가 난 것을 알고 이미 대피한 상태였다.
온 방안을 더듬거리며 벽에 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 눌렀지만 정씨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 속에서 현관문이라고 생각되는 출입구를 찾아 비틀거리며 빠져나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하며 화재로 인해 발생하는 유독가스를 계속 들이마신 정씨는 심한 구토증세와 매운 연기에 자극받아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로 인해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3층 복도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겨우 찾아 나온 원룸 복도의 상황은 방안보다 더 심각했다.
화재가 발생한 103호에서 하염없이 밀려 올라오는 시커먼 농연은 복도를 모두 점령한 상태였기에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혼자 더듬거리며 옥상을 찾아 올라간다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302호의 현관문으로 들어온 정씨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119로 화재신고를 알렸다.
“아저씨! 켁켁...숨....을 못 쉬....겠.....어...요!”
“침착하시고 창문을 열고....”
인천소방방재본부 119상황실 근무자와 통화를 하던 중에 정씨는 유독가스를 많이 마신 탓에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시간....
202호에는 군 면제를 받기위해 충북 제천에서 올라와 인천 남동공단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는 전윤태(남,24세)씨도 화재가 난 것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는 소리...살려 달라는 소리....대피하라는 소리...
전씨는 머릿속이 복잡한 악몽을 꾸고 있었다.
잠시 후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전씨는 벌떡 일어나 침대 옆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연기가 창문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나마 창문가에 있으면 짧은 호흡이라도 할 수가 있었다.
그 순간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난 뒤에 TV에서 화재대피 요령을 알려준 것이 생각났다.
전씨는 화장실을 향해 기어가서 걸려있는 수건을 찾아 코와 입을 막고 다시 열려있는 창문으로 나왔다.
살...려 주....세......요...
3층에서 누군가가 애타게 구조요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문을 열고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전씨는 살려달라는 신음소리를 외면한 채 자신만 빠져나가 살아난다면 비겁한 자신의 모습에 오랫동안 후회가 남을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고 3층을 향해 사방을 휘저으며 올라갔다.
열려져 있는 302호의 방바닥에는 남자 한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전씨는 누워있는 정씨를 안아 침대 옆 창문으로 데리고 가서 정씨가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도록 창문을 모두 열고 주민들에게 계속 구조요청을 하였다.
11월 14일 새벽 01시 40분
인천소방방재본부 상황실로부터 출동지령을 받고 남동공단소방서에서 주택 화재출동을 하였다.
문학경기장 옆 대로변까지는 짧은 시간안에 도착할수 있었지만 문학동 주택가 주변의 야간 주차사정도 다른 여느 주택가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치의 빈 공간도 없이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소방차량들은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한 채 늘어지기 시작했다.
화재현장은 시간이 지체될수록 인명피해가 더 커지기에 구조대장과 대원들은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화재가 발생한 원룸 주택가로 정신없이 뛰어 올라갔다.
유독가스를 피해 3층 창문에 위태롭게 걸터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뛰어내리지 마세요! 지금 구조하러 올라가고 있어요!”
구조대원들은 공기호흡기 면체를 쓰고 렌턴을 비춰가며 요구조자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302호의 침대위에는 눈동자의 초점을 잃은 채 입에 거품을 물고 축 늘어져있는 정씨의 처참한 모습이 발견되었다.
구조대원들은 침대 밑에 깔려있는 얇은 담요를 펼쳐 정씨를 감싸들었고 창문에 앉아있는 전씨에게는 보조호흡기를 착용시켜 3층에 고립된 두 명을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
화재현장에서 구조된 정씨는 곧바로 대기 중인 구급차량에 인계되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며 길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잠시 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는 진압되었고 대원들은 유독가스가 유입된 각 층의 현관문을 열고 확인하며 추가로 인명피해가 있는지 재차 확인 하였다.
본격적인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또 다시 되풀이되면서 증가하고 있다.
화재는 남의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항상 안전수칙을 잊지말고 철저하게 예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천남동공단소방서119구조대(032-819-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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