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할 용기가 남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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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문영현
- 작성일
- 2006년 2월 12일
- 조회수
- 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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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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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출동 미담사례)
2006년 2월 3일 14:20분경
인천 모 건설회사의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성우(남,30세)의 핸드폰 벨소리가 계속 울려대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최근 한 달 전에 술집에서 만난 뒤 사귀어 오게 된 김은주(여.32세) 였다.
“성우씨! 그동안 너무 행복했고 미안해.”
“왜 살아야하는지 나도 모르겠어.“
“나 이제는 편히 잘래.”
그리고 통화가 끊겼다.
설 명절 전날인 지난 1월 27일(금요일)에도 성우는 고향에 내려가다가 은주의 전화를 받고 급히 인천으로 다시 올라온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은주는 현관문을 모두 잠근 채 자신의 손목에 수차례 자해를 시도하여 출동한 남동공단소방서119구조대가 사다리를 설치하고 베란다로 들어가 문 개방을 한 뒤 관교소방파출소의 구급차량이 가까운 연수병원 응급실로 신속하게 이송시킨 일도 며칠 되지 않았기에 성우의 불안은 더해가기만 했다.
은주는 미혼이 아니었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5살이 갓 지난 아들도 남편이 데리고 간 뒤부터 매일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직 미혼인데다 착하기만 한 성우 또한 그러한 처지에 놓인 은주와의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하고 있었다.
성우는 힘들어하고 있는 은주를 돕기 위해 인터넷 ‘자살방지협회’에 들어가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하기도 했고 ‘인천여성의 집’ 에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며 심해지는 은주의 이런 행동에 성우 본인까지도 영향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몇 차례 받았기에 이젠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모른 채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시험대에 오른 듯 전화가 왔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어떡하지. 119에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님 모른 척 해야 되나......... ”
은주와의 관계는 정리하더라도 신고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성우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고 119를 눌러 인천소방방재본부 상황실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구조. 구급출동!
선학동 367번지 00분식점 앞 원룸 2층...요구조자가 현관문을 잠그고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으로 신속히 출동바람.』
자살을 시도하려고 결심한 사람들 대부분은 현관문을 굳게 잠그기에 환자를 이송할 구급대와 함께 119구조대가 동시 출동하는 일이 자주 있곤 한다.
자살소동은 시간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기에 최대한 빨리 사고현장에 도착하려고 남동공단소방서119구조대의 구난차량은 요란한 싸이렌을 울려대며 한낮의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신고자가 회사에서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했기에 사고현장 주택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원들은 공구세트와 로프를 들고 계단을 통해 원룸 주택으로 올라갔다.
2층 복도는 누군가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싸늘한 겨울바람만 스쳐 지나갈 뿐 너무나 고요했다.
구조대원들은 본부 상황실에서 접수받은 204호의 현관문을 두드려 보았다.
“119구조대입니다. 안에 누구 계세요?”
전혀 인기척이 없자 대원들은 복도 바닥에 엎드려 신문투입구를 살짝 들어올려 집안을 구석구석 들여다보았다.
집안은 현관문 입구에 가지런히 놓여진 슬리퍼만 보일 뿐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신문투입구로 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침대 위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옥상에서 로프 설치하고 2층 베란다로 진입하는 방향으로 합시다!”
대원들은 부대장의 지시로 안전벨트를 착용한 뒤 로프를 타고 내려가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다행히 창문은 내부에서 잠겨져 있지 않았다.
잠시 후 로프를 타고 들어간 구조대원에 의해 현관문이 열렸다.
침대위에는 은주씨가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차분히 누워 있었다.
관교구급대원이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냈다.
왼쪽 손목을 예리한 칼로 수차례 그은 흔적과 함께 시뻘건 피가 침대와 이불 곳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은주씨를 흔들어 깨웠다.
겨우 반쯤 눈을 뜬 은주씨는 정신이 희미하고 몽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생명이 위독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자해한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며 구급대원이 물었다.
“정신 차려 보세요. 약은 뭐 드셨어요?”
구조대원들은 침대 주변과 방안 휴지통의 뚜껑을 열어 복용한 약의 종류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다행히도 주변에 치명적인 약물 섭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대 위 액자 속에 끼워 세워놓은 한 장의 사진이 눈에 자꾸 들어왔다.
한때 어린 아들과 함께 살면서 찍은 것 같았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 속 모자(母子)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수면제는 몇 알 드셨어요?
“혹시 따로 병원에서 드시는 약이 있으세요?”
"..................."
“저희에게 알려주셔야 병원에 가서 고생을 덜 하세요.”
고개만 끄덕일 뿐 구급대원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자 구조대원들은 은주씨를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들어 의자형 들것으로 옮겼다.
밖의 날씨가 상당히 추웠기에 장롱에서 가벼운 이불을 꺼내 은주씨를 덮어 주었고 구급차량은 또다시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은주씨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몇 차례나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을 정도의 용기가 남아있다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미래를 위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남동공단소방서119구조대(032-819-1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