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승가 특별법 위반관련 고소사건에 대한 공개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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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백동현
- 작성일
- 2012년 7월 13일
- 조회수
-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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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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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승가 특별법 위반관련 고소사건에 대한 공개심문
이 공개심문은 소도령 2012-34호 규정따라 진행되는 공개심문으로, 이해승후손측이 2009년 9월 본인의 ''신분변동''을 야기했을뿐더러 암살미수관련형의가 있기에 ''소도* 핵심 위해관련사건''이기에 공개심문절차를 진행하며, 소도령 2012-34호 규정에 의해 ''동 공개심문서''에 대한 해명이 ''7일 기한내''에 답지하지 않을 시, 이를 모두 ''인정한 것''(認定意思)로 간주하며, 동령의 규정에 의거 그 결과물이 남측 사법기구등에 증거물로 제출됨을 천명하는 바다.
심문대상자: 이우영(매국형 친일행위자 이해승후손)
공개심문일: 2012.7.11.
1. 공개심문절차에 들어가기 앞서 예비심문
1) 귀측은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계후손(系後孫)을 표방하나 혈연적으로는 철종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집안이 맞지요? 참고로 전계대원군은 본래 회평군(초명 원경), 영평군(초명 욱) 그리고 막내로 훗날 철종이 된 3남을 두었던 바, 회평군은 젊은 시절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당했고, 철종도 후사가 없어 왕위승계를 못한 군주였으며, 영평군도 본래 후사가 없었던 인물이서, 전계대원군의 직계자손은 사실상 단절된 셈이다. 그러했기에, 이해승의 조부인 이재순을 양자로 입적하여 영평군의 후사를 이었던 것입니다.
2) 귀측은 ''친일파 재산환수법'' 통과 이전 그리고 본인이 귀측집안 재산조사업무 담당책임자였던 관계로 친일파 재산환수업무 내내 본인에 대해 주목하고 특별히 경계해왔었지요?
3) 귀측은 2006년 12월 10일 전후하여, 친일파 재산환수법 제정 1주년이 되는 시점이자 귀측 집안 재산에 대해 본인이 조사1과 1팀장으로 담당책임으로 업무를 개시했음을 알고는 원주 소재 본인의 모아파트 복도의 ''소화기 분말''을 터뜨려 15층부터 2층까지 전 복도에 하얗게 뿌렸던 사실이 있지요? 이는 ''본인에 대한 경고이자 분풀이''가 맞지요?
4) 귀측이 본인의 소재지를 안 시점은 이보다 이전에 알았던 것이고, 2005년 10월 친일파 재산환수법 통과를 얼마 앞둔 시점에 발생했던 ''본인의 차량 앞바퀴 실펑크사건''에도 관여한 사실이 있나요?
5) 귀측은 본인이 조사 1과 1팀장으로 귀측집안의 재산조사업무(후에 2007년 시기 귀속업무도 담당)를 준비하던 시기 즉 2007년 하반기(10월 무렵)에 본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현재 ''남북교류협력협회 회장 김호창''(당시에는 MB대선캠프에 관여중이던 인물)와의 만남 자리에 우연을 가장하여 이우영의 아들과 고등학교 동문관계에 있던 ''변철환''이라는 인물을 보내 ''재산조사업무''에 대해 문의했던 적이 있었고, 본인이 ''매국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엇음을 전해 듣고 알고 있었지요?
6) 귀측이 본인의 의사를 궁금하게 여겨 2009년 7-8월경에도 이우영씨와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동창관계였던 ''한민족 민족회의'' 공동의장이신 이재룡선생을 통해서도 관련사안에 대해 간접 의사타진했던 적이 있지요?
7) 두 차례 간접 의사타진은 본인에 대한 관심이 깊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두차례 모두 ''매국형은 어쩔수 없다''는 의사를 전해듣고는 본인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쌓였고, 귀측집안이 ''친일재산조사위와 국가를 상대로'' 진행하던 행정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본인문제의 해결''이 핵심이었음을 판단한 사실이 있었지요?
8) 때마침 2009년 상반기 ''독립운동자예우에 관한 일부법률 개정안문제''로 쇄신론 파동이 벌어지자, 본인의 해촉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적극 개입한 사실이 있지요?
2. 2009년 9월 친일재산조사위 해촉건에의 관여 부분
1) 귀측은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직후, MB측 축하연 장소로서 그랜드힐튼호텔을 제공했던 사실이 있지요?
2) 이 행사는 사용자측(MB측)이 비용전액을 부담한 행사가 아닌 앞서 말한 ''변철환''과 김호창등과의 인적망을 통해, 귀측이 나서서 연회를 개최해준 성격이 짙은 자리였던게 맞나요? 이는 귀측 집안의 집안문제라 할 수 있는 있는 ''친일재산의 국가귀속등의 문제''를 염두에 둔 조치이지요? 참고로 귀측은 공시지가로 600억 내외의 토지가 국가귀속조치된 상황이었지요(이 중 일부인 200여억원 규모 토지에 대해서는 2010년 5월 고등법원 승소와 연이은 대법원 확정판결로 되찾아간 사실이 있지요?).
3) 귀측은 2008년 MB정권 등장 후,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고 민원제도개선 비서관이었던 ''이상목''이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지요? 참고로 ''이상목 비서관'' 또한 앞의 김호창씨의 소개를 알게 된 인물이다.
4) ''이상목 비서관''은 다름아닌 본인에게 이우영씨 아들과 동창관계라고 밝혔던 ''변철환''을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게 주선했던 남북교류협력협회 회장인 김호창씨가 소개했던 인물인데, 귀측과도 무슨 관계 또는 친분관계는 있던 인물이 맞지요?
5) 2009년 9월의 해촉건에 관여했던 청와대관계자가 바로 ''친일재산조사위'' 문제와 국가보훈처등을 관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 ''이상목 민원제도 개선 비서관''이 주도한 것이었던 바, 귀측과도 교감을 갖고 진행된 게 맞지요?
6) 귀측이 본인의 해촉등에 관여하게 된 근본이유는 2009년 당시 소송중이던 골프장 부지 ''시티라이프'' 관련 토지 및 그 토지대금(200억원 규모)을 상대로 한 국가소송 때문이었지요?
7) 해당사건은 2009년 9월 본인이 해촉된 다음해인 2010년 5월 고등법원판결을 통해 귀측이 소송에서 승소하였고, 최종적으로는 대법원 확정판결로 승소하여 ''해당 재산의 국가귀속을 무효화시키고 재산을 되찾아 간 사실''이 있지요? 해당사건은 애초 1심판결에서 ''원고 패소''되었던 바, 고등법원에서 승소판결하여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지요(이해승 재산 귀속취소송 항소심서 승소(뉴시스, 2010.5.28.등)).
8) 본인이 위원회에 계속 근무했다면 당연히 재산조사는 물론 국가귀속시 업무담당 책임자로서 해당 소송에서도 담당하게 되어 귀측이 승소할 가능성이 작았던게 사실이지요? 다시 말해 귀측은 ''선의의 사패토지''로 보기에도 문제가 있는 집안이었던 것이며, 해당부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본인이 ''위원회에서 해촉된 것''이 귀측 집안이 2010년 5월 고등법원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는 결정적 전기가 된 것이 맞지요?
3. 현재 고등검찰측에 계류중인 ''특별법위반 등에 관한 고소건''에 대해
1) 고소사실과 관련하여 현재 귀측이 주장하는 바(본인이 가사의 어려움을 호소해외 도와준 것)와는 달리 본인의 2009년 해촉건에 가담했으니 그 문제(귀측집안과의 집안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여 1,000만원의 금품수수사실이 있지요? 해당건은 2010년 6월 말 무렵 본인이 ''본인의 (2009년 친일재산조사위에서의) 해촉에 관여하여 (당시 천정배등과 불거진) 집안문제를 증폭시켰으니, 위원회 잔여기간 1년치 급료 5,000만원 실비보상하라''고 요청하여 발생한 일이며, 당시 이재룡선생이 주선하여 ''1,000만원''으로 금액을 조정하여 ''매듭짓기로 하고'' 전달한 사실이 있지요?
2) 해당금액은 '' 해촉으로 야기된 서로의 집안간의 문제 즉 집안문제를 매듭짓는다''는 조건으로 전달했던 것이지요?
3) 귀측이 해당 사실과 관련하여 본인이 그 무슨 집안을 얘기했고 ''본인의 가사의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준것''이라는 것은 전자는 백서발간 등을 준비했기에 일정 사실에 부합하지만 후자는 거짓말이 맞지요?
4) 2010년 7월에 귀측 집안과 매듭되었음에도 2011년 8월 무렵 재차 고소조치에 나선 것은 ''암살미수건''이 불거졌기 때문이고 그에 대해서는 본인이 충분히 의사를 전달했던 바 있지요. 즉 본인이 ''귀측집안도 암살미수사건에 관여한 집안이니 다 매듭짓지 않으면 안된다'' 얘기했음에도 묵살조치하여, 본인이 고소조치를 시작한 것이 맞지요?
5) 귀측도 현정은등 중추원 후손들이 만든 것으로 얘기되는 ''중추원이너서클''에 참여하는 회원이 맞나요?
6) 귀측도 중추원 이너서클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 ''본인에 대한 제거기도행위''(이른바 2007년 6월 암살미수사건)에 가담하였나요?
7) 2007년 6월의 암살미수사건은 ''중추원후손 이너서클의 합의물''이 맞지요? 해당 합의에 참여한 집안은 누구누구 집안인가요?
2012.7.11.
高麗聯邦國
소도*
檀君
귀측 대표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특별법 위반 관련 미묘한 행적자료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만 투서원본을 공개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
귀측이 부려먹은 하수인에 의해 2007년 6월 발생한 암살미수행각자료
민족문제연구소측 인물의 殺人滅口企圖行爲(2007.6.)
재설치된 이해승 후손 구속수사 촉구 서명방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23477#)